연말을 맞아 한해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즐거웠던 일 서운했던 일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수와 오해는 언제나 생길 수 밖에 없는데 그때 중요한 것이 사과의 기술이다.


제대로 사과하고 묵혀있던 감정의 지꺼기를 닦아내면 둘 사이의 관계는 문제가 생기기 전보다 더 튼튼해 질 수 있지만, 서투른 사과와 어정쩡한 화해로 덮어놓은 문제는 앙금이 남게 된다.


사과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이 글을 보며 나는 제대로 사과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사과의 여섯 가지 언어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김호/정재승


‘사과’에 대한 노래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영국의 팝가수 엘튼 존의 ‘미안하다는 말은 가장 힘든 말인 것 같아(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일 것이다. 1976년에 발표돼 32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사랑 받고 있는 이 곡은 엘튼 존이 직접 대부분의 가사를 쓰고, 그의 단짝인 작사가 버니 토핀이 마무리를 해준 몇 안 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미안해’는 정말 가장 힘든 말일까?

물론 아니다. 사과의 다양한 표현 중에서 어쩌면 가장 하기 쉬운 표현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006년 9월 한 주말판에서 엘튼존의 노래 제목을 비틀어 ‘미안하다는 말은 더 이상 가장 어려운 말이 아니다’(Sorry is no longer the hardest word)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당시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잇따른 사과를 한 것을 두고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미안해’보다 더 힘든 사과는 무엇일까?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사과의 언어를 가지고 있을까? 심리학자와 언어학자들은 전세계에서 쓰이는 사과 표현에 대해 연구해왔다. 사과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가장 대표적이면서 흥미로운 연구는 ‘문화간 화행실현 프로젝트’(Cross-Cultural Speech Acts Realization Project, 일명 CCSARP)이다. 이 연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과의 표현 패턴을 찾는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참가 연구자들은 미안한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나라마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다섯 가지의 사과 표현군(apology speech act set)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편, 심리학자인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마스 역시 2006년에 발표한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들』(The five languages of apology)이란 책에서 사과를 위한 다섯 가지 표현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두 연구에서 제시하는 다섯 가지의 사과 패턴 중 네 가지는 서로 일치하는데, 결국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흔히 사과할 때 ““미안해”” 혹은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유감(regret)의 표현이지 완전한 사과는 아니다.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마스는 ““미안해””라는 말 뒤에 ““하지만……””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즉 ““미안해…… 하지만 네가 약속을 너무 촉박하게 잡았잖아””식의 표현은 사과라기보다는 비난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과의 앞뒤로 변명은 되도록 붙이지 않는 것이 좋다.

둘째,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미안한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냥 ““미안해””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약속을 까먹고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라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구체적인 사과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라는 표현은 사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으로 진정한 사과와는 거리가 있다.

셋째는 유감표현을 넘어서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통 ““내가 잘못했어(혹은 실수했어)””라고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다. 사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사과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하나는 발생한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책임 인정이다. 종종 사과한 사람은 했다고 하는데, 받은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는 보통 사과에 책임 인정이 포함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과를 유감 표명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명확하게 인정하는가의 문제는 사과의 진정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넷째, 사과를 할 때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의 의지나 보상을 표현하는 것은 ‘미안해’만큼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당신의) 화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라고 말하거나, 회사일로 가족들과 시간을 못 보낸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미안해. 앞으로 한 달에 두 번은 꼭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할게””라고 앞으로의 실행 계획을 약속하는 경우는 ‘미안해’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사과는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 함께 미래 개선에 대한 의지 표명이다. 이런 점에서 보상이나 개선의 뜻을 사과와 함께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섯 번째로 사과를 할 때, 향후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다. 기업이 사과문을 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실수를 반복했을 때 이런 표현은 오히려 책임감 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나를 용서해 주겠니?””라고 표현하는 것인데, 이는 가장 어려운 사과 표현이며 특히나 자존심 강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마스는 사과를 할 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용서를 청함으로써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상대방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나 자신을 ‘잘못을 저지른 실패한 인간’으로 낙인 찍는 듯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차마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용서를 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용서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과의 표현에 대한 연구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 첫째,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후 단순한 ‘미안합니다’라는 유감의 표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라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유감 표명은 사과의 시작은 되어도 완성은 아니다. 적어도 사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표현은 기본으로 사용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나머지 네 가지 표현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선택하여 보다 완성된 사과를 할 수 있다 (각 사과 표현들의 조합에 따라 효율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다룰 예정이다).


둘째, 위의 연구 결과는 기본적으로 대인 관계에서의 사과 표현이다. 물론 이는 모두 대중을 향한 사과에서도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을 대변하는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특히 조심스럽게 단계별 사과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섣부르게 보상책을 제시했다가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셋째, 사과표현 선택에 대한 조심스러움 때문에 사과 자체를 너무 늦게 하는 우를 또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책임성이나 보상책에 대해서는 추후에 사과하더라도 이 때문에 기본적인 유감 표시까지 늦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때로 사과는 두 번에 나누어서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점. 사과 표현이 무엇이든 진실성이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않는다면 아무 효력이 없다는 점이다. 사과의 말이 하기 힘든 진짜 이유는 사과하는 용기를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의 용기는 위대하다. 독일과 일본의 전후(戰後) 평가가 갈라지는 대목이다. (끝)


 


원문 링크:
http://hohkim.com/entry/사과의-여섯가지-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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