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CI Korea 2014 학회 둘째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낮에는 노먼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뵙고 저녁에는 관련 키노트 강연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만나 뵌 노먼 교수님은 아주 소탈하고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노먼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거나 말씀 드릴 때는 연세도 많으시고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상당히 조심하게 되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편하게 대해주시는 게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느끼는 데는 문화적인 차이도 상당히 큰 것 같은데요, 영어로 메일을 쓸 때 처음에는 Mr. Donald Norman께 드리는 메일을 적다 어느 순간부터는 Hello, Don으로 시작하는 메일을 쓰게 되더군요. 이번 책에는 전과 다르게 책 표지에도 Donald Norman 대신 Don Norman이라고 애칭을 쓰셔서 살짝 놀랐습니다. 영어에는 높임 말이 없고 우리가 구어체를 잘 모르니까 Hello, Don이라고 시작하는 순간 친구에게 적는 메일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노먼 교수님께서 키노트 강연을 하신 날 점심 전에 차를 마시며 말씀을 나눴는데, 어쩌면 만나 뵙지 못할 뻔 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일정 중에는 HCI 학회 때 여유가 있으시다고, 대부분의 세션이 한국어로 진행되니 여유 시간에 보자고 하셔서 두 달 전에 약속을 했는데.. 정작 학회 기간 중에 모든 일정이 다 잡혀있고 ‘사실 나도 내 일정을 잘 모른다’고 하셔서 아주 어렵게 만나 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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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가 감사의 선물로 준비한 한복 와인 커버를 전해드렸습니다. 서양인들은 알록달록한 원색 대비를 좋아한다고 해서 알록달록한 것으로 여러 개 준비 했는데, 예상외로 가장 덜 알록달록한 것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네요. 왕 의상이 상대적으로 덜 알록달록하지만 품위 있고 멋있어 보이긴 합니다. 마음에 들어하신 의상과 함께 기념 사진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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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번에 새로 출간하신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 Revised and Expanded Edition(줄여서 DOET2)’에 사인을 받고 제 책과 노먼 교수님 책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의 책을 보시고는 아주 인상적으로 봤다고 하시고 무엇보다 ‘책이 예쁘다’고 하시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노먼 교수님 책은 지금까지 전부 흑백으로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책도 흑백으로 인쇄되었는데, 미국 출판사는 책을 컬러로 찍지 않으려 하고 ebook 마저도 흑백으로 펴낸다고 불평 하시더군요..^^;; 사실 제가 처음 DOET2 책을 준비한다고 쓰신 글을 봤을 때는 예제에 컬러 사진을 사용해서 보기 쉽게 만들 거라고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진행되진 못했나 봅니다. 그래도 ebook은 컬러로 만들면 좋을 텐데 안타깝네요.

제가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헷갈렸던 몇 가지 용어를 여쭤봤습니다. 우선 Concptual Model(개념 모형)Mental Model(심성 모형)이라는 용어에 관해서. 이 두 용어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만 연구자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사용해서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노먼 교수님께서도 각 책마다 이 용어를 조금씩 다르게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또 Designer’s Model, User’s Model 같은 용어가 등장해서 더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걸 명확하게 정리하려고 얼마나 여러 번 관련 내용을 봤던지…

그래서 노먼 교수님께 책에서 Conceptual Model 을 명확하게 정의하신 것을 찾지 못했고 책마다 조금씩 다르게 정리된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 너무나 단호하게, 내가 책마다 다르게 설명한 용어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게 잘 알려진 어포던스(Affordance)이지요. 교수님께서 DOET2 책을 쓰신 직접적인 계기는 아마도 어포던스라는 용어가 잘못 사용되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의도가 아니실지..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후에 교수님께서 키노트 연설에서 용어를 다시 설명해주기도 하셨지요.

“지난 이틀간 개념 모형, 심성 모형을 헷갈려 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우리는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비가 되어서 내리고, 이것이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고 다시 물이 증발해서 수증기가 되는 순환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런 과정을 밝혀내서 우리에게 알려줬는데, 우리는 머리 속에 물의 순환에 관한 개념 모형을 만들어서 이 변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개념 모형은 물론 심성 모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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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감성디자인(Emotional Design) 책에 소개된 Reflective Level(반성적/사고적/회상적 레벨) 같은 용어는 한국어로 번역하기 정말 곤란하다고 말씀 드렸는데(한 측면만 부각되므로).. ‘원래 인간의 감정이 복잡한데 용어를 하나로 정하기가 쉽겠느냐’ 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 DOET2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 날의 대화는 이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이번에 제 책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면서 책 제일 뒤에 있는 추천사 원문에 직접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다른 모임으로 이동하실 때 모임 장소에 계신 이건표 KAIST 교수님께 이 책을 아냐고 하면서 장난스럽게 사인하신 부분을 펼쳐서 보여주기도 하시더군요(친하신가 봅니다). 그런데 이건표 교수님께서는 이게 뭐지..? 라고 놀라시는 분위기 미소;;

아무튼 추천사에 해 주신 사인과 DOET2 책에 써주신 with great regard 란 문구를 보면 매우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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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노먼 교수님의 키노트가 시작됩니다. 2,000여명을 수용한다는 연회장에 자리가 부족해서 서서 듣는 사람도 있었다니 열기가 참 뜨거웠습니다. 따로 만나 뵈었을 때는 친척 어르신 같은 친근한 느낌이었는데 많은 청중 앞에 서 계신 것을 보니 노먼 교수님, 그리고 김진우 교수님이 참 영향력이 크신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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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교수님의 키노트 스피치는 주로 이번에 출간하신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Revised 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난번 제가 포스팅 한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심리 개정판 25년만에 출간’ 글에서는 이번 책에 새로 추가된 디자인 씽킹과 HCD, 비즈니스 관련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는데 이번 키노트는 그 내용에 관해서 주로 말씀하셨네요. 노먼 교수님의 키노트는 제가 요청 받아서 정리한 내용이 있으니 별도로 포스팅 할 예정이구요, 이 글에서는 노먼 교수님의 책에서 보이는 디자인의 접근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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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교수님은 지금까지 출간된 책에서 시점에 따라 상당히 다른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키노트 중 Q&A 세션에서 과거와 지금 말씀하시는 게 반대되는 관점이어서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죠. 그런 말씀을 종종 들으실 것 같습니다.

* 도널드 노먼 교수님의 책과 관점의 변화

  1. 디자인과 인간 심리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 사용하기 쉽고 사람들이 실수하지 않게 제품을 만드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 디자인 관점에서는 사용성, 유용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노먼 교수님께서 스스로 사용성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시는데 그 사용성 분야의 기본이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감성 디자인 (Emotional Design)
    • 감성을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 우리 속담처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디자인 관점을 소개합니다. 실제 예쁜 UI는 쓰기 어려워도 사용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죠.
    • 사람의 감성을 형성하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디자인을 이야기합니다.
    • 사람의 감성과 감정, 사람과 감정 교류를 하는 로봇 등이 중요한 주제입니다.
  3.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Living with Complexity)
    • 이 책은 재미있게도 주제가 ‘디자인과 인간 심리’와 반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복잡해도 OK).
    • ‘단순하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하신 노먼 교수님께서 한국에서 생활하시면서 ‘복잡함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서 책을 쓰셨습니다.
    • 요약하면 문제는 복잡함이 아니고 혼란스러움이라는 내용입니다.
    • 복잡함을 줄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혼란스러움을 통제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4. 디자인과 인간 심리 개정판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 초판에 비해 2개의 챕터가 추가됩니다. ‘6장, 디자인 씽킹, 7장,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디자인’이 추가되었습니다.
    • 지금까지의 책이 주로 개별 제품을 잘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다면, 추가된 챕터에서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소개합니다. 이번 키 노트는 대부분 이런 주제를 말씀 하셨습니다.
    • 다시 살펴보면 DOET 개정판은 이전의 1, 2, 3번 책의 관점을 모두 포함하고 거기에 진짜 문제를 찾아내서 비즈니스 환경에서 해결하는 방법까지 담으려고 하셨네요. 욕심이 많으신건가.. ^^

많은 분들이 노먼 교수님의 이런 용감한 관점의 변화를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관점으로 인정을 받았으면 그 주장을 그대로 유지해도 상관이 없는데.. 애써서 과거의 관점과 충돌이 생기기도 하는 다른 관점의 말씀을 하시네요.

학교에서 기업체(애플, HP)로 기업에서 다시 학교와 스타트업 기업(창업, NNGroup)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신 것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적당한 시점에 편하게 살기로 결정할 수도 있는데 계속 관점을 바꾸고 일을 바꿔서 새로 연구하시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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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런 만남에는 사진이 빠질 수 없겠죠? 출간된 책과 함께한 인증샷입니다. 책을 바꿔 든 저 자세가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다른 포즈로 못 찍었네요..^^

개인적으로 노먼 교수님을 만나 뵈니 자기 관리를 잘 하시는 독특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로비를 내려갈 때 젊은 학생들이 5층에서 4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데 본인은 계단을 이용하자고 하시더군요. 하루에 8~9km를 걸으신다니.. 저도 반성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은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바에서도 여직원이 POS로 계산서 입력하는 장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면서 재미있다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비용을 본인이 내겠다고 하시기까지..!)

저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호기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고, 세계를 다니며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에너지와 체력, 식견이 있다면 참 좋겠죠? 노먼 교수님처럼 멋있게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품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저도 제 할 일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걷기 운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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