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CHI 2015 학회에서 경험한 재미있고 놀라운 발표들을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4일간 Full Day로 학회가 진행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표 베스트 5를 골랐습니다.

* CHI 2015 후기 차례
1. 사진으로 보는 CHI(카이) 2015 Korea 후기
2. CHI 2015 하이라이트 –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발표 Best 5 (현재글)
3. CHI 2015 하이라이트 – 눈에 띄는 스마트 인터랙션 전시물
4. 해외 학회에 참석 할(지도 모르는) 당신을 위한 가이드

아래 소개하는 발표들은 대부분 CHI 학회에서 우수 논문으로 뽑힌 것들입니다. 선정된 베스트 논문의 리스트와 주제를 살펴보면 최근 어떤 분야가 주목 받는지 알 수 있는데, 이번에는 특히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이 혼합된 Mixed Reality(증강현실, 혼합현실) 분야의 전시, 논문이 눈에 띄었고, 우수 논문에는 물리적/전자적 장치와 모바일 기술을 연동한 주제가 많았습니다.

발표를 보면 그다지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논문이 베스트 논문으로 뽑히기도 하고, 아주 좋은 발표가 수상 논문에서 빠졌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대략 살펴보니 기존에 흔히 보던 주제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최신 트렌드와 관련되고 심사위원을 설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는 논문이 수상하는 것 같습니다. CHI 2015에서 발표한 600여 편의 논문 중에 베스트 논문으로 총 21편이, 주목할만한 논문으로 98편이 선정되었습니다. 전체 리스트와 논문 초록은 CHI 2015 – Best Papers(21)Honorable Mentions(98)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아래에 소개해드리는 발표는 대부분 이 상을 수상한 논문들입니다.

논문 발표라고 하면 흔히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부터 소개하는 논문은 상당히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1. 사람의 호흡과 맥박을 측정하는 스마트 홈

Smart Homes that Monitor Breathing and Heart Rate

우선 제가 가장 놀랐던 논문입니다. 스마트 홈에서 사람의 호흡과 심장 박동을 측정하는데, 몸에 측정 장치를 부착하지 않고 무선 신호로 이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집에 공유기 같은 무선 장치를 하나 두면 사람의 호흡과 심박을 자동으로 측정한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CHI 2015 Korea-037

원리를 보면 무선 신호가 사람에게 도달하고 반사하는 것을 계산해서 사람의 호흡 수를 알아낸다고 합니다. 횡경막이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는 것 같은데.. 아이디어는 좋지만 정말 쓸만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HI 2015 Korea-040

그런데 놀랍게도 들숨, 날숨 뿐 아니라 심장 박동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숨을 내쉬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슴 움직임이 적어지는데 이 때 약한 가슴 떨림을 감지해서 심장 박동을 측정하는 것 같습니다. 음.. 저도 엔지니어 기반이지만 이런 시도를 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CHI 2015 Korea-044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정확도입니다. 2~6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의 호흡 수와 심장 박동 수를 거의 98% 이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여러 명이 겹쳐 있거나 벽으로 막히면 정확도가 낮아진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놀랍습니다. 팔목이나 가슴에 심박계를 붙이고 다녀야 헬스케어 모니터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집에 무선 장치 하나만 있으면 가족과 어르신의 건강을 항상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2. 초음파와 마이크를 이용해서 물리적 인터랙션 장치 구성

그 다음은 아주 재미있는 장치입니다. 현재 스마트폰에 물리적인 버튼, 다이얼 등의 인터페이스를 추가할 수 있나요? 아마도 물리적인 버튼을 추가하려면 블루투스 연결 등으로 복잡하고 비싼 장치를 연동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아주 간편하게 해결하는 장치를 소개합니다.

 

이 논문은 설명하기보다 영상으로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우선 한번 보시죠.
CHI 2015 Korea-147

원리는 초음파를 이용합니다. 스마트폰의 스피커에서 초음파 소리를 계속 내고, 스마트폰 마이크는 이 소리를 받아서 계속 측정합니다. 그리고 스피커와 마이크 사이에 고무 호스 같은 통로를 통하게 하는데, 그 통로에 변화를 줘서 인터페이스를 인식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통로 길을 막는 버튼을 둬서 버튼을 인식하게 하고, 소리를 일부만 비껴가게 하고 이를 인식하게 해서 다이얼(핸들)을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소리의 높낮이와 크기를 파악해서 통로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파악합니다.
CHI 2015 Korea-158

위 사진처럼 왼쪽 오른쪽 통로의 소리를 분석해서 손으로 통로를 잡거나 한쪽으로 이동하는지 인식하는 등 대단히 다양하게 인터페이스를 응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점은 왼쪽 아래에 있는 디즈니 마크입니다. 이 UI는 디즈니 연구소에서 실험적으로 만든 인터페이스이구요, 미국 대학(카네기 멜론)의 인턴들은 이런 리서치를 디즈니 연구소에서 수행하나 봅니다. 이런 재미있는 연구를 하다니, 디즈니 인사 담당자에게 사람이 많이 몰릴 만 합니다.

3. 어포던스의 확장

노먼 교수님이 디자인 업계에 용어를 알리셔서 유명해진 어포던스 관련 논문입니다. 특이하게도 논문의 주제는 affordance++ 였습니다. 그냥 어포던스도 아니고 ++가 붙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하면서 발표장으로 갔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CHI 2015 Korea-200

큰 강의실에서 발표를 하는데 앞 뒤 문까지 사람들이 몰려서 구경을 하고 있네요. 이러면 더 궁금해지는 법입니다. 도대체 어포던스++이 무슨 내용이길래? 찾아보니 역시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논문도 영상을 봐야 이해가 됩니다. 노먼 교수님이 말씀하신 어포던스(Affordance)는 사물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는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 디자인에서는 인지된 어포던스(Perceived Affordance), 즉 사물의 본래 특성보다 사람이 어떠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물의 특성이 중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글씨가 잘 써지지만) 매끈해서 글씨가 안 써질 것 같은 표면에는 사람들이 낙서를 안하는데, 이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어포던스)보다 매끈해서 글씨가 안 써질 것 같아 보이는 인지된 특성(인지된 어포던스 = 행동유도성) 때문입니다. 어포던스 관련해서는 노먼 교수님 키노트 정리를 참고하세요.
CHI 2015 Korea-202

이 발표에서는 재미있게도 팔과 손에 특별한 기기를 장착해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잡기 전에 미리 어떤 행동을 할지 알려주는 장치를 소개했습니다. 처음 보는 물체가 있는데 좌우로 손을 움직이게 유도해서 흔들게 한다든지, 처음 보는 문을 위로 들어올려서 열게 알려준다든지 하는 식입니다. 행동유도성을 밖으로 꺼내서 장치가 행동을 유도하게 한 것인데, 아이디어나 구현이 재미있었습니다.

 

4. DIY 바이오 키트

그 다음은 우리는 잘 모르지만 다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 프로젝트입니다. 바로 오픈소스 바이오 키트입니다. 최근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오픈 소스 하드웨어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어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쓸만한 제품을 만들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시도가 바이오 분야에서 진행되다니? 생소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CHI 2015 Korea-280

이 발표에서는 장비가 비싸고 접근하기 힘들어서 전문가의 분야로만 생각한 바이오 분야에 저렴한 오픈소스 장비를 사용하는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CHI 2015 Korea-285

오픈 소스 바이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장치는 아마도 항상 같은 온도/습도를 유지하는 항온 항습계, 그리고 원심 분리기 같은 것인가 봅니다. 이런 기기 중 일부를 누구나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소스를 공개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그래서 DIY Bio Kit 이겠죠.
CHI 2015 Korea-287

지난 수 십 년간 전자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 우리는 손 안에 예전의 컴퓨터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다음 혁신은 유전공학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고, 실제 많은 연구 자금이 바이오 쪽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얼마 안가서 오픈 소스 하드웨어 다음으로 오픈 소스 바이오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게 아는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5. 건강 정보가 겉면에 보이는 팔찌 트래커

한국에서 진행한 행사였지만 한국 연구자들의 발표를 보기 어려워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여러 곳에서 발표를 했는데, KAIST 발표자가 가장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국내 발표자 중에는 해외파인지 아주 유창한 영어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소 진땀을 빼며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국내파 발표자에게는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제품은 피트니스 트래커의 정보를 팔찌 겉면에 표시하는 건강관리용 트래커입니다. 트래커 모듈 자체는 기존의 핏빗을 이용하고, 연구는 건강 정보를 문신과 비슷한 형태로 팔찌 겉면에 출력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식으로 수행했습니다.
CHI 2015 Korea-082

건강 관리 제품을 사용해도 뭔가 내적 동기만으로 계속 운동과 활동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개선하고자 나의 활동량을 팔찌 겉면에 출력합니다. 지그재그 패턴 등의 형태로 특정 기간의 운동량이 기록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된 내용이 중첩되어서 특정한 무늬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소홀히 한 기간이 있으면 바로 눈에 띄니까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CHI 2015 Korea-087

시스템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아이디어가 복잡하진 않지만 실제로 팔찌 겉면에 문신용 장치를 프린터 형태로 만들어 출력해야 하니 3D 프린팅하는 프린터를 만들고 구동하는 부분이 복잡할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활동량 등의 데이터를 겉으로 보이게 해서 가시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발표였습니다.

6. 기타 – 다른 재미있는 주제의 논문

다른 논문들은 간단하게 아이디어만 공유하겠습니다.

CHI 2015 Korea-278

일을 나눠줄 때 크게 쪼개서 주는 게 좋은가, 작게 쪼개서 주는 게 좋은가 고민한 논문입니다. 이때는 외국인에게 길 찾아가게 하는 태스크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론은 위의 슬라이드처럼 작게 잘라서 안내하면 오류는 적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중간에 방해 받는 것에서 영향을 적게 받는다고 합니다. 크게 잘라서 주면 시간은 적게 걸리지만 에러가 많아지고, 방해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네요. 길 안내 측면에서는 작게 잘라서 주는 것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CHI 2015 Korea-250

그 다음에 거저먹는 프로토타이핑 논문입니다. 피기백(Piggy Back)은 돼지가 갈 때 등에 붙어서 무임승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페이스북, 트위터를 이용해서 비싼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쉽게 프로토타이핑을 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항에서 심심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시스템을 트위터로 실험해봤다고 하는데..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시험했지만 결과는 크게 효과적이진 않았습니다. 왠지 논문 심사도 무임승차해서 통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우수 논문에 뽑혔네요. 왜 우수 논문에 뽑혔을까?
CHI 2015 Korea-098

리서치 할 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보드 게임을 대화의 촉매로 이용한 결과를 보여준 논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덜 알려진 Game of Life를 이용했다는데 사람이 태어나서 결혼하고 사는 인생을 게임으로 만든 거라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에도 인생게임 이라는 이름으로 온 오프라인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CHI 2015 Korea-093

이 발표에서는 편집 레이아웃을 자동으로 변경해볼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소개했습니다. 한 요소의 크기와 배치를 바꾸면 다른 요소가 자동으로 바뀌어서 적당한 형태로 좌우에 배치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거기서 또 변경할 수 있는데, 빠르게 레이아웃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아주 유용해 보였습니다.
CHI 2015 Korea-293

마지막으로 “강남스타일”의 본고장 강남, 삼성동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싸이가 클로징 스피치를 담당했습니다. 위 사진의 친구들은 (아마도 방송용으로) 싸이의 말 춤을 추고 있는데요, 정작 싸이님은 노래 한 곡 하지 않고 연설 이후에 바로 퇴장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발표를 보면서 국제 학회라 확실히 수준이 높고 재미있는 시도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바로 돈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지만 많은 비용이 드는 연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에는 그 반면 바로 써 먹는 기술의 연구에는 뛰어나지만 장기적인 투자에 소홀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수준으로 따지자면 한국 연구자들의 수준이 CHI 발표자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의 UX, UI 연구자들이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문화의 차이인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글, MS 등 직원에 비해 한국 기업의 발표와 참여는 부족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참고로 참석자 인기 투표로 선정된 세 편의 인기 논문을 소개합니다. 저도 보지 못했는데 모두 바이오, 몸과 관련한 발표네요.

  1. “bioLogic: Natto Cells as Nanoactuators for Shape Changing Interfaces;”  Lining Yao et al. from MIT & MIT Media Lab
  2. “BodyVis: Body Learning Through Wearable Sensing and Visualization,”  Leyla Norooz et al. from the University of Maryland
  3. “Proprioceptive Interaction.”  Pedro Lopes et al. from the Hasso Plattner Institute

마지막으로 CHI 학회에서는 발표장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인도, 동남아, 일본 스타일의 모든 영어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히잡 쓴 여학생이 중동 스타일의 영어로 발표한 세션과 이탈리아 여학생이 한국 예능에 나오는 크리스티나와 똑같은 발음으로 영어 발표를 하던 세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정말 똑같습니다). CHI 학회에서 여러모로 독특한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기회 되면 꼭 한 번 참석해보시길 추천합니다. CHI 인상적인 발표 정리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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