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어려움, 혁신의 딜레마 – S사 강의를 다녀와서

에 의해서 | 2013-12-03 | 자유롭게 | 코멘트 0개

지난 주에 S전자 UX 담당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 번 강의를 했지만, 그때는 주로 UX가 주 업무가 아닌 사업부 인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 이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UX가 주업무인 프라이드가 강한 멤버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라 어느 때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이번에는 주니어, 시니어로 나눠 조금 다르게 강의를 진행했는데, S전자에서는 항상 어떤 반응이 나올지 조심하면서 말을 하게 됩니다. 제 강의에는 제조사와 애플을 직접 비교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부 인원을 대상으로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최고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진 UX 부서의 멤버들은 논리적인 방어와 날카로운 지적을 해서 활발한 토론이 오갔습니다.

저는 책에서 디자인의 관심사가 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기술, 기능, 경험의 순으로 변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내용이 언제나 경험 중심 디자인이 최고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각각의 디자인 접근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는데, 이들을 잘 조합해서 제품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 한 제품이 성공한다는 점을 소개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 중심, 기능 중심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훨씬 익숙하고, 현재의 컴퓨터 기술은 경험 중심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주로 경험 중심 디자인을 소개하고 경험 중심 사례와 이전의 사례를 비교한 것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나 책 서평에서 제가 애플 광팬(애플빠)인 것으로 오해하는 분이 있으신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애플 제품을 그다지 많이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아이팟 터치 1세대, 아이패드 1세대 제품으로만 모든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아이폰 3GS 디자인은 너무 밋밋해서 별로인데 왜 디자인이 멋지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지요. 제가 책을 쓰는 중에 변하지 않는 디자인 원칙을 잘 적용한 제품에 어떤 것이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찾아낸 사례는 애플 제품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애플 사례가 많이 실린 것입니다. 되도록 구글, MS 등의 사례를 많이 실으려고 했지만 남을 따르지 않은 독창적인 좋은 디자인 사례는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책을 비판적으로 보지 마시고 사례를 싣게 된 의도를 봐 주셨으면 합니다.

(보안 관련 이슈가 있어서 말을 가려서 하려니 어렵네요. 이제부터는 좀 편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photo from flickr

최근에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단어로 혁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의 국정 운영 과제가 창조와 혁신을 키워드로 하는 창조 경제라는데.. 어떤 면에서는 게임을 도박과 같이 취급하고 국가 보안법이 뉴스에 매일 등장하는 등, 시간을 70년대로 되돌리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혁신이라는 단어가 이미지 메이킹 용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긍정적인 혁신과 창조는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강의 등에서 삼성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언가 변화를 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나타내기엔 어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9월 UX 강의에 참석하신 사업부 쪽 수석께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중국 제조사들이 한국, 미국 제품에 비해 거의 손색없는 제품을 쏟아내는데 대처할 방법이 필요해서 왔다고 하시더군요. 기술적인 차별화도 점점 어려워지고 기능적인 추가도 한계에 다다른 분위기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기존의 접근을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 상황을 요약하면 “문제는 아는데 해결이 쉽지 않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도 괜찮은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무자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도 실제 중요한 의사 결정이 기존 방식대로 이루어지면 결국 변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SK 플래닛은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Maker 등의 행사를 후원하고 주최하면서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 있지만, SK 그룹 차원에서는 액티브 엑스로 도배된 샵 메일을 입사 지원시에 강제로 사용하게 하겠다는 등, 10~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의사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결국 진정한 혁신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많은 국내 회사들이 실적과 스피드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돈이 되는지, 바로 결과가 나오는지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는데, 이런 경향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는 실무 담당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기업들이 이런 접근으로 현재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혁신’을 이야기할 때 아주 중요하지만 간과하는 한 가지 것이 있습니다. 혁신에는 반드시 혁신의 크기 만큼 ‘리스크’가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리스크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혁신을 하려는 기업은 그만큼 리스크도 감수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혁신을 말하는 사람이나 기업, 광고를 보면서 그만큼의 위험 부담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면, 그 경우는 진심으로 혁신을 할 생각이 없고 혁신이란 단어를 이미지 개선용으로만 사용하려는 경우일 것입니다. 혁신이 언제나 그만큼의 리스크를 동반하니까, 잘 나갈 때 혁신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한 대로 하면 현상 유지는 하는데 큰 변화를 추구하면 잘 될지, 잘 되지 않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제조사들이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을 의식하면서 위기감을 느끼는데, 변화의 필요성은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워 하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인 것 같습니다.

삼성은 지금까지 위기의 순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효과적으로 변신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앞으로 삼성이 기기 제조사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최고의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려 합니다. 물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해야겠죠. 시간이 갈 수록 칭찬할 거리가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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