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이 어려워서 다들 고민입니다. 불경기에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보니 수능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9급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합니다(참고). 최근 제 주위에서도 지인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겠다고 해서 직업에 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자리를 찾으려 하는데, 결국 찾은 일이 감정평가와 관련한 것이어서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몇 년을 공부하고 시험 합격해서 어렵게 들어가는 자리인데, 정말 그 일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정도로 안정적인 자리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최근에 드론 조종사 등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IoT, 웨어러블 기술이 일상화되면 많은 새 직업이 생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 감정평가 관련 일이라니. 몇 년 전 주위에서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공인 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공인 중개사 사무실이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해서 걱정은 커집니다. 이런 계기로 미래에 유망한 직업과 사라질 직업을 정리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리는 자료는 Oxford Martin School의 Carl Benedikt Frey, Michael A. Osborne 교수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조선 비즈에서 ‘현재 직업의 절반은 20년 안에 사라질 것, 직업별 컴퓨터 대체 가능성 조사’라는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앞으로 20여년 이내에 현재 미국 내 직업의 47% 정도가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합니다. 계산 능력, 규칙에 의한 추론이 중요한 업무, 단순 반복 업무들은 모두 컴퓨터가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위 표에서 0에 가까울 수록 대체될 가능성이 적고 1에 가까울 수록 대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텔레마케터, 화물 등을 중간에서 주고 받는 사람들, 은행 창구 직원, 모델 등이 컴퓨터화될 확률 97%이상에 속하는 직군으로 구분했습니다.
무인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버스 기사/택시 기사(89%), 주차장 종업원(87%) 자리를 컴퓨터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공인 중개사 같은 부동산 거래 브로커도 97%, 86% 수준으로 급격히 컴퓨터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을 직업으로는 우선 컴퓨터와 관련한 직업, 음악 미술 등 예술 관련 직업, 심리 치료 등 사람의 심리와 관련한 직업, 사회성이 중요한 직업이 꼽혔습니다. 그리고 외과/내과 의사와 초 중등 교사도 컴퓨터로 대체하기 힘들 것이라고 하네요.
직업을 하나씩 보면 경향성을 알기가 어려우니 전반적인 그림을 보겠습니다(보고서에서 소개한 다이어그램에 제가 한글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그래프는 현재 미국의 직업을 컴퓨터로 대체 할 수 있는지 가능성에 따라서 분류한 것입니다. 0~30%에 해당하는 왼쪽 부분은 컴퓨터가 수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야이며, 70~100%에 해당하는 오른쪽은 컴퓨터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나타냅니다. 현재 직업의 47% 정도가 대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류되었고 33% 정도는 대체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컴퓨터로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관리, 비즈니스, 금융
- 컴퓨터가 모든 작업을 수행하더라도 결국 최종 의사결정과 관리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종 단에서 기계화된 작업을 관리하고, 사업을 만들고, 금융 관련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로 남은 것 같습니다.
- 컴퓨터, 기술, 과학
- 단순 반복 작업, 컴퓨터가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계산 업무는 컴퓨터가 맡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하겠죠. 기술을 개발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등의 일자리는 계속 필요하겠습니다. 웹 사이트, 모바일 앱 등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다행스러워 보입니다.
- 교육, 법률, 커뮤니티, 예술, 미디어
- 교육 분야는 최근 무료 온라인 대학 교육(MOOC)이 확산되면서 오프라인 교육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회성을 키워야 하는 초/중등 교육과정은 컴퓨터로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 법률 분야도 판례 검색 등은 컴퓨터화 되겠지만 정교한 법리적 해석을 다루는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 커뮤니티, 예술, 미디어 분야는 사람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측면이 강하니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이 직접 참가해야 가치를 인정할 것 같습니다.
- 건강 관련
- 이 보고서에서는 의사, 헬스트레이너 등 전반적인 건강 관련 산업을 묶어서 표시했습니다. 질병의 진단은 기계가 많은 도움을 주지만 오진 등의 책임 소재도 있으니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할 것 같습니다.
컴퓨터가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군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서비스, 세일즈
- 커피숍 웨이터, 웨이트리스 등의 많은 서비스 업무는 컴퓨터가 수행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으로 꼽혔습니다. 미래에는 버튼을 누르면 서빙 로봇이 막 내린 커피를 전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울까요?
- 판매(세일즈)는 이미 상당 부분 온라인화 되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배달과 부동산 중개 등도 온라인화 되고 있으니 앞으로 이 분야에서 컴퓨터의 역할이 커질 것은 분명합니다.
- 건설, 운송, 설치/관리/수리
- 이런 일들은 컴퓨터와 로봇이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기계화 하는 것이 효과적이겠죠.
- 사무, 사무보조, 농사, 생산
- 복사, 이메일 전송, 약속 관리 등의 단순 사무 보조는 컴퓨터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 농사, 생산도 기술이 발전하면 로봇이 사람보다 훨씬 잘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어떤 보고서든 판단의 근거가 중요합니다. 이 보고서에서도 컴퓨터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과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나누는데 세 가지의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고 빅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에 불가능했던 많은 일을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능력이 필요한 일은 컴퓨터로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컴퓨터로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능력
- 사회적 지능
- 사람의 사회적 지능은 협상, 설득, 보살핌 등의 다양한 요소로 구성됩니다. 이런 다양한 측면의 작업을 컴퓨터로 수행하기는 어렵습니다.
- 설거지는 사회적 지능이 필요 없으므로 대체 가능성을 100%로 이벤트 기획자, PR 관계자는 사회적 지능으로 살아가는 직업이므로 대체 가능성을 0%으로 뒀습니다.
- 직업 특성: 통찰력(상황 파악), 협상, 설득, 배려
- 창의성
- 인간의 창의성은 정의하기 어려우며, 컴퓨터로 대체하기도 어렵습니다.
- 그런 측면에서 법원의 서기는 대체 가능성 100%, 생물학자, 패션 디자이너는 대체 가능성 0%로 기준을 삼았습니다.
- 직업 특성: 독창성, 순수 예술
- 인식과 조작
- 컴퓨터는 아직 복잡한 인식 과정을 거쳐서 조작하는 작업에는 능숙하지 않습니다. 외과 수술 같은 경우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고 변수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을 컴퓨터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 단순 작업을 하는 텔레마케터는 대체 가능성을 100%로 두고, 외과 수술은 대체 가능성을 0%로 뒀습니다.
- 직업 특성: 손재주, 민첩성, 비좁은 작업 공간, 불편한 자세
그러니까 앞으로 이 세 가지 특성에 해당하는 일을 하면 직업이 컴퓨터로 대체될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그림1]로 돌아가서 그래프의 왼쪽 영역에 있는 직업은 이런 세가지 특성에서 대체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 받은 직업입니다. 개발만 예를 들더라도 개발을 하려면 설계 과정에서 창의적 능력이 필요하고, 개발 중에 상황을 파악하고 설득, 배려, 협상하는 등 다양한 구성원과 협력해야 하며, 진행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하는 등 복합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체될 확률이 낮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처음에 언급한 지인의 감정평가 관련 일은 아쉽게도 표준화 후에 컴퓨터가 처리하기 아주 좋은 직업군 같습니다. 업무 중에 복잡한 이해 관계 파악, 협상, 설득 등이 중요하다면 그 부분은 오래 살아남겠지만, 결과를 최종 판단하는 관리자를 제외한 자료 수집, 정리 등을 수행하는 많은 일은 컴퓨터가 더 잘 수행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직업을 준비하느라 오랜 시간을 투자하려면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겠습니다.
디자인, UX, UI를 고민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림1]의 오른쪽 영역에 있는 서비스, 세일즈, 사무, 농업, 생산, 건설, 운송 등의 분야가 앞으로 자동화 될 것이며,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솔루션도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런 서비스 시장에서 많은 새 솔루션을 만들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사람 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시점에도 위기와 기회가 함께 찾아옵니다. 다들 준비하고 있다 기회를 잘 잡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보고서 원문 보기(pdf) – The_Future_of_Employ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