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탈진’ 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호의(好意), 즉 좋은 의도로 사람들을 돕다가 스스로 너무 지쳐서 탈진하게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한국어판에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기사에 의하면 함께 일하는 관계에서 사람들을 다음과 같은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 챙겨가는 사람
  • 주고 받는 사람
  • 베푸는 사람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세가지 중 한가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챙겨가는 사람은 내 것은 주지않으면서 남의 것을 받아야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주고 받는 사람은 줄 만큼 주고 받을 만큼 받아서 균형을 맞추려는 사람입니다.  베푸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누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베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남들에게 베풀고 호의로 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특별히 드러내서 알리지 않습니다. 그럴 때 챙겨가는 사람은 베푸는 사람의 호의를 이용해서 여러가지 이득을 챙기고 결과물을 자신의 성과로 치장해서 발표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챙기는 사람이 모든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어려운 일은 베푸는 사람이 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고받는 사람과 베푸는 사람들은 당연히 ‘신세를 지면 갚아야 한다’거나 ‘도움 받은 만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조차 잘 못합니다(그래서 남을 믿게 됩니다). 하지만 경험상 세상에는 끝없이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당히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욕심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갑질’, ‘열정페이’ 사건은 대부분 극단적인 챙겨가는 사람들이 벌이는 일일 것입니다.

챙겨가는 사람을 조심하라

친절한 정도를 행동 패턴과 조합하면 다음와 같은 6가지 경우가 생깁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볼때 정말 주의해야 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챙겨가는 경향과 친절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해하기 쉬운 호의 타입
  1. 챙겨가는 사람, 친절
  2. 챙겨가는 사람, 안친절
  3. 주고 받는 사람, 친절
  4. 주고 받는 사람, 안친절
  5. 베푸는 사람, 친절
  6. 베푸는 사람, 안친절

우선 2)친절하지 않으면서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은 그나마 상대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봐도 조심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친절하지만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은 잠깐 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유난히 친절해 보이고 처음부터 가까운 관계 처럼 행동한다는 정도라고 할까요. 이후 그런 관계를 강조하며 상당한 희생과 배려를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가족 같이’ 지낸다고 하는 하숙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때 가족같다는 말은 손님 대접을 하지않고 식사 대충주고 말 편하게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최근 클라이언트 중에도 무리한 요구를 끝없이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미팅 몇번 하고는 ‘우리는 이제 가족 회사입니다’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결국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서 그 관계는 프로젝트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은데 자기 것을 챙기는 사람들은 그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서 악용하나 봅니다(우리가 남이가?).

친절하지 않지만 베푸는 사람을 챙겨라

정말 신경써야 하는 타입은 6)친절하지 않지만 베푸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친절한 사람 = 베푸는 사람’, ‘친절하지 않은 사람 = 베풀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긍정적인 속성끼리 연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그런 것 같은데, 실제로는 이 둘 사이에 그리 연관 관계가 높지않다고 합니다(HBR).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떠올려 봅시다. 자신의 것을 더 많이 내주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대단히 친절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겉으로 대단히 친절할 수록 정말 자기 것을 나누지는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특히 종교인, 서비스직 등, 친절함이 요구될 경우). 업무로 만나는 관계에서는 그 사람을 세세하게 알기 어려우므로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나 태도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 쉽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상사나 동료, 협력사 직원이 사실은 나를 제일 잘 도와주고 지지해 준적은 없었는가? 그런 적이 있었다면 앞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합니다. (가슴 아프지만 반대도 생각해봅시다. 내가 좋아한 사람이 사실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을 챙겨간 사람은 아닌가?)

오만과편견2

친절하지 않지만 베푸는 사람은 영화(소설) ‘오만과 편견’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교적이지 않은 남자 주인공(다아시)를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다아시는 정 많고 베풀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단지 겉으로 보기에 친절하지 않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워할 뿐입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도 지독한 오해를 받으며 어려운 일들을 겪지만, 모두가 욕하고 오해할 때도 묵묵히 선행을 계속합니다. 뒤늦게 그의 진가를 알게된 사람들이 겉 모습만 보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닿고 스토리는 해피 엔딩으로 끝납니다.

만약, 내가 베푸는 사람이라면?

챙기는 능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가끔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챙겨가는 능력 또한 클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수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영혼까지 털어가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상대의 입장이나 어려움은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상대의 희생과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죠. 고수들은 정말로 교묘하고 세련되고 욕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는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만약 챙겨가려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보인다면 하수입니다).

사실 나이나 사회적 위치가 낮은 사람도 챙겨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자기 과제 해결해달라고(당연히 무료로) 요청하는 학생들, 수시로 불만사항 개별 면담 요청하는 부하 직원도 챙겨가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남을 돕기 좋아하는 베푸는 사람이라면 이런 챙기려는 사람이 주위에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내가 베푸는 사람일 때, 챙겨야 할 사람과 상황에 집중하다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질 수도 있습니다. 요청 오는 대로 이런 사람들을 계속 돕다보면 내가 내 일을 못할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되고 남도 돕지 못하는 탈진(‘호의탈진’) 상태가 됩니다. 저는 이렇게해서 건강이 악화되어 큰 병을 얻은 사람, 몸 담았던 업계를 떠나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모두를 챙기던 친구가 어느 순간 모두에게 무관심하게 변하는 모습 등을 지켜 봤습니다. 호의로 시작해서 어려움을 겪으니 가슴 아픈 상황입니다.

그러니 베푸는 사람들은 주고 받는 사람처럼 항상 관계에서 균형을 찾으려 해야 합니다. 남을 돕더라도 항상 내가 쓸 에너지를 남겨놓아야 스스로 망가지지 않고 남을 더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처 받은 후 과도한 보호막으로 자신을 감싸지 않게 됩니다.

마무리

나는 베푸는 사람인데,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상대와 함께하고 있다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는 도망치라고 조언합니다. 누군가 나의 ‘영혼까지 털어가려’ 한다면 주고 받는 관계로 돌아서서 소진되는 것을 막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그 다음 우선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할 겁니다. 말로만 잘 해주는지 행동으로 잘 해주는지, 말과 행동이 다르면 행동을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 않지만 진짜 베푸는 사람을 찾으세요.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주면 누구보다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