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직관적인 디자인' 제품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라는 용어는 머리로 계산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사용법을 알 수 있는 제품을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보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디자인 방법론의 한 종류로서 '직관적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는 디자이너의 직관(Intuition)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디자인 방법으로, 애플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오래가는 인터랙션 디자인 #5] 직관적 디자인
직관적 디자인(Intuitive Design)은 디자이너의 직관과 통찰력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디자인 방식입니다. 직관적 디자인은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기존 제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할 때 필요합니다.
이 방법은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Centered Design)과는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사용자가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항상 확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용자가 혼란스러워하는 점을 개선하고 불편해하는 요소를 보완하여 완성된 제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사용자에게 물어보고 검증받는 방식은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보다 약간 개선된 제품은 만들 수 있지만,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마우스가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키보드와 텍스트 단말기에 익숙한 사용자들 앞에서 마우스를 보여주며 이것이 마음에 드는지, 구입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면 어떤 답변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의미 있는 답변을 얻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우스라는 입력 장치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잘 설계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갖춘 OS와 그 위에서 동작하는 편리한 프로그램이 함께 제공될 때입니다.
실제로 마우스는 1970년대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에서 발명되었지만,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애플이 매킨토시를 출시하며 GUI와 마우스를 기본으로 제공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사람들이 이 장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기 어렵고, 작은 마우스 포인터에 집중하느라 쉽게 피로해질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만약 이때 사용자 중심 디자인 방법을 적용해 사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그 비판을 그대로 디자인에 반영했다면, 지금과 같은 마우스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직관적 디자인은 디자인 과정을 사용자에게 검증받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과는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디자인해도 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직관적 디자인은 사용자 자신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욕구와 필요, 목표를 정확하게 읽어내 그것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사용자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감, 이것이 바로 직관적 디자인이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마우스의 예를 다시 들면, GUI가 제공되면서 사용자들은 화면의 요소를 직접 조작할 도구가 필요해졌습니다. 특히 표 계산이나 그래픽 프로그램에서는 더 정교한 조작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키보드로 조작하거나 화면을 펜으로 터치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애플은 사용 편의성, 정확도 등 여러 요소를 고민한 끝에 마우스를 채택했고, 이 결정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마우스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팟(iPod) 역시 직관적 디자인을 대표하는 제품입니다. 아이팟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지점은 바로 전원 버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원 버튼뿐만 아니라 별도의 볼륨 조절 버튼도 없이, 클릭 휠 하나로 메뉴 선택과 볼륨 조절을 모두 해결합니다. MP3 플레이어에서 전원과 볼륨 버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전원 버튼을 없애려면 대기 상태의 전력 소모를 전원이 꺼졌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낮춰야 하는데, 이는 높은 수준의 기술적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오해 1: 천재 디자이너의 단독 작업?
직관적 디자인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천재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직관적 디자인을 대표하는 애플의 디자이너는 다양한 미팅을 통해 아이디어를 완성해 나갑니다. 애플에서는 먼저 10개의 창의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이를 3개로 압축한 뒤, 다시 1개로 좁혀 최종 제품을 만듭니다. 디자인 과정의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정교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과정에 대한 공유도 적극적으로 진행합니다.
애플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크게 세 가지 목표를 가집니다.
- 브레인스토밍과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직관과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합니다.
- 제작 미팅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실제 구현 가능한지 검증하고 구체화합니다.
-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 디자인 결과를 경영진과 투명하게 공유합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직관적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창의력에, 그의 직관과 통찰력을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결합될 때 탄생합니다.
오해 2: 우연히 떠오르는 아이디어?
또 다른 오해는 직관적 디자인이 우연히 발견되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찾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노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직관과 통찰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뉴턴의 사과 이야기일 것입니다.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뉴턴이 아무런 노력 없이, 단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물 간에 작용하는 미지의 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전문 지식을 쌓은 상태였습니다. 그가 가진 과거의 경험과 연구, 다양한 지식들이 상호작용하며 무르익은 시점에, 떨어지는 사과라는 계기를 통해 만유인력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윌리엄 더건은 그의 저서 『제7의 감각,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섬광 같은 통찰력을 '전략적 직관'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드는 사고의 도약이 바로 이런 통찰력의 순간에 일어나며, 이는 머릿속의 지식 파편들이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되고 합쳐지면서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먼저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의 조각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의 파편과 생각의 조각들은 다양한 종류의 장작과 같습니다. 충분한 땔감이 마련되어 있으면 작은 불씨로도 쉽게 큰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땔감이 없다면 아무리 불을 붙이려 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뉴턴에게는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와 발견, 다양한 지식들이 잘 준비된 땔감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떨어지는 사과라는 작은 불씨만으로도 만유인력이라는 거대한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직관적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직관과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경험과 연구를 통해 완성됩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직관적 디자인 방법에 대해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기 위해서, 다음 글에서는 애플의 디자인 원칙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