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문화 전시 기획 공무원이 특별한 기획을 하는 방법에 관해서 소개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음악 기획자(Music Producer)이신 조현일님이 전하는 음악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현일 님은 영화 7번 방의 선물, 각종 드라마 등에 삽입되는 음악을 만드셨고, 피아노 연주 앨범을 출시하기도 하셨습니다. 유명한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한 인재이십니다. 요즘은 싸이랑 자주 비교 당하신다고 하네요. ^^
많은 분들께 음악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생소할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많은 역할이 필요하며 여러 전문가들이 힘을 합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음악 디자인은 보통 영화, 드라마 등을 만드는 과정에 영상 작업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먼저 영상을 만들고 영상에 맞춰 음악을 만든 다음, 영상을 음악, 음향, 대사와 합해서 더빙하는 작업을 거쳐 최종 편집된 영화/드라마를 만들게 됩니다. 이때 음악, 영상, 대사는 전혀 다른 영역이며 상황에 따라 무엇이 주 요소고 무엇이 보조 요소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때는 음악이 크게 들리지만 어떤 때는 음악이 배경에 깔리면서 대사가 주가 되고, 어떤 장면에서는 음향이 중요할 때도 있죠. 그래서 더빙 과정에서 종종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네요.. ^^
음악 기획은 사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좋은 음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음식의 맛을 설명하거나 미술 작품을 설명하고, 비주얼 디자인을 설명할 때도 설명하기 어려운 점은 비슷해 보입니다. 답변으로는 음악을 이성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템포, 키, 텍스쳐, 음역, 음정 등의 용어를 써서 설명하면 음악을 좋고 나쁨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네요.
강의를 들으면서 웹/모바일 기획에서 겪는 어려움과 음악 기획에서 겪는 어려움에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모든 디자인은 통한다는 점을 다시 느꼈는데요, 대표적으로 아래 그림과 같은 상황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했습니다.
조현일님은 음악가를 가장 힘 빠지게 하는 사람으로 막연하게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클라이언트를 꼽으셨습니다. 영상에 따라 어떤 음악을 쓰고 어떤 장르와 분위기가 어울리는지 등 생각해야 할 내용이 엄청 많은데, 막연히 어울리는 음악으로 해달라고 하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겠죠. 거기에다 ‘곡을 써달라’거나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마음이 완전히 떠난다고 합니다. 왜나햐면 음악 기획자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 한 곡’ 만드는 게 아니고 영상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분위기에 맞게 다양한 배경음악이 쓰이고 몇 개의 주제가 변조되어 반복 사용되는데 그런 음악을 음악 기획자가 만드는 것이죠.
이 설명을 듣고 옆에 있던 다른 분들은 디자이너는 ‘예쁘게’, 기획자는 ‘혁신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서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예전에 MP3 플레이어를 ‘아이팟’처럼 잘 만들 수 있는 회사 없냐고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최근에는 라이프 로깅 제품을 나이키 퓨얼밴드 정도로 잘 만드는 회사를 찾는 분이 계시더군요.. 그런 제품을 만들려면 최고의 디자이너가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며, 단순히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연결된 모든 요소를 함께 고민해서 최적화 해야하는데, 거기 필요한 많은 노하우와 노력을 무시하고 단순히 겉모습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셈입니다. (스마트폰 두께 1mm 줄이고 작동 시간 1시간 늘리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노하우가 필요할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클라이언트가 좋은 제품을 만들 가능성은 아주 낮을 것 같습니다.
다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음악을 디자인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살펴 볼까요? 영상에 음악을 입히는 작업을 스파팅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좀 찾아보니 영상의 특정 지점(Spot)에 자막, 음악, 음향 등을 넣을 위치를 결정하는 것을 스파팅(Spotting)이라고 하네요. 영화/드라마에 쓰이는 음악의 특성을 잘 모르는 클라이언트가 막연히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표현한 영화/드라마 음악을 만들 때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요소를 결정해야 합니다.
음악의 스파팅에 고려해야 하는 점을 알려주셨는데. 현실적으로 테이블에 앉아서 음악에 관한 이런 내용을 함께 고민하는 감독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감독은 나는 이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XXX 음악을 쓰려고 생각했다고 영화에 쓸 음악을 고집한다고 하는데.. 음악 기획자 분들은 그런 감독을 가장 피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어떤 종류의 음악을 사용할지, 오케스트라로 녹음 할지 피아노로 할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데 음악의 세부사항에 관심을 기울이는 감독이 많지 않나 봅니다.
위의 음악 스파팅 작업에서 고려할 점은 UI 디자인 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과 같이 말을 좀 바꿔봤는데..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서 ‘화면’은 애플리케이션과 사이트를 기획할 때 하나의 화면을 의미함)
화면/UI 요소의 배치(스파팅)에 고려할 점
- 왜 이런 ‘화면/UI요소’가 있어야만 하는가?
- ‘화면/UI요소’를 어느 위치에 배치해야 하는가?
- ‘화면/UI요소’가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
- 언제 ‘화면/UI요소’가 나타나고 사라져야 하는가?
- 어떤 분위기로, 어떤 표준/비표준 요소를 써서 ‘화면/UI요소’를 만들 것인가?
- 어떤 기술을 써서 ‘화면/UI요소’를 구현할 것인가?
음악 스파팅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부분은, 음악을 어떻게 넣을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느 부분에서 음악을 뺄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회화, 디자인에서 이야기하는 의도적인 여백(white space)과 같은 내용인데요. 방 하나를 여백으로 두고 큰 점 하나를 찍어 점의 느낌이 방을 꽉 채우게 만든 이우환 작가의 작품처럼 음악에서도 의도적인 묵음을 이용해서 다음에 나올 장면, 효과음, 음악 등을 더 강조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편집 디자인이나 UI 디자인에서도 여백의 활용은 중요한데, 주로 애플이 여백을 강조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도 많지만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상적인 부분만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 실패하지 않는 음악 작업의 비결은 프로토타이핑
- 곡을 만들 때 A안, B안, C안을 만들어서 피아노 단선 멜로디로 먼저 반응을 파악한다.
- 최근에는 클럽 DJ가 음악 기획자(Music Producer)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 음악 기획에도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능력, 사람을 파악하는 감각(촉?)이 중요해지고 있다.
- UI, UX 분야에도 관심의 주제가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드는 사용성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파악하는 심리학 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비슷한 경향인가.. ^^
- 가장 좋은 영화 음악은 음악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음악이다.
- 영화 그 자체에 완전히 몰입해서 음악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음악이 최고의 음악이다.
- UI, UX 분야에서도 누군가가 디자인했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가장 잘 디자인된 제품으로 꼽는데 역시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좋은 영화로는 시네마 천국, 로드 투 퍼디션을 추천해 주셨고, 이 분야에 참고할만한 책으로는 사운드 디자인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로드 투 퍼디션은 저도 못 본 영화인데 봐야겠습니다. 길게 적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제가 나중에 참고할 생각으로 정리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관련 정보를 찾으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국내에 보기 어려운 과학전시 기획자 분을 만납니다. 다른 전시 분야와 과학 전시는 어떻게 다른지, 국내의 과학 전시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세미나 내용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좋아요’가 글 올리는 사람에겐 큰 힘이 됩니다. 모두 좋아요 한 번씩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