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큐레이터의 마음에 관해서 소개했는데, 이번에 소개할 강의는 문화전시 기획자이신 김해보 팀장님의 이야기입니다. 서울 문화재단 정책 팀장으로 계신데 스스로 '반 공무원'이라고 하시면서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아주 독특한 행사들을 직접 기획하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 서울예술지원박람회 ’라는 행사를 했는데, 기존의 예술 지원 사업은 국가에서 공고를 내면 관련 단체나 기관, 개인이 신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술지원박람회는 이것을 뒤집어서, 국가가 "우리는 이런 지원 사업을 합니다"라고 박람회를 열어 알리고 예술가들의 지원 신청을 받았습니다. 새롭고 신선한 시도이지만,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일이 늘어나니 반가워하지 않을 행사 같기도 합니다. 이런 독특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일을 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의 중에 개인의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인생 스토리를 많이 알려주셨는데, 뒷풀이에서 이렇게 시적 감성이 풍부하신 분이 어떻게 P대학 물리과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다른 분들이 궁금해하셨습니다. 답으로는 물리학과가 인간과 우주의 탄생을 연구하는 과라고 생각해서 들어갔는데, 처음 2 강의까지 개론을 재미있게 듣고 나면 그다음에는 공식을 외우는 거라 재미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아들이 집안 가훈을 적어오라고 했는데 “반항하라”라는 가훈을 즉석에서 지어서 주었다고 하시네요. 게을러지려는 자기 자신에게 반항하고, 남들과 똑같기를 바라는 주변의 압력에 반항하고, 불의를 보면 반항하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왠지 반항하라는 가훈에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
보통 공무원 집단이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시도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집단에서 새로운 기획을 어떻게 승인받아서 진행할 수 있는지 노하우를 여쭤봤습니다. 어쩌면 공개하지 말아야 할 노하우 같기도 합니다만, 간단히 아래와 같이 정리하겠습니다.
공무원 집단에서 독특한 기획을 승인받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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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디어를 상사의 아이디어로 만든다 실제 새로운 기획의 아이디어는 내가 만들었더라도, 그것을 초기부터 계속 흘려서 상사가 마치 자신이 그 아이디어를 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핵심 아이디어를 던지면 상사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것이고, 그것을 채택하면 독특한 기획이더라도 승인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단점: 이 방법은 효과적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모든 공을 상사가 가져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 아이디어는 내가 냈더라도 나는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사가 성공해야 나도 성공하니,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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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다 다른 기관이나 해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진행하자고 하면 승인이 쉽게 난다고 합니다. 만약 일이 잘 안 되어도 기획 자체를 탓하기보다는 다른 외부 요인이 있었다고 말하기 용이합니다.
- 참고: 주위를 둘러보면 해외 사업 모델을 국내에 도입해 크게 성공한 사례는 드물지만, 이러한 접근은 설득에 효과적이어서 관련 제안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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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위자를 활용한다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독특한 사업을 진행하면 명분이 생깁니다. 논리학이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권위에의 호소’와 같은데, 실제로 권위자를 방패 삼아 사업을 진행하면 많은 것이 용서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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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산 사업으로 진행한다 예산을 배정받지 않고 협찬 등으로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진행하면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노력한다고 칭찬해 준다네요. 물론, 예산 배정 없이 행사를 잘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외의 질문으로는 자신이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행사(예: 정부 홍보성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 경우나, 국민 세금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지 고민하며 비효율적인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고충 등 행사 기획자들이 경험하는 실무적인 고민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심플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일 속에서 이상을 추구하려 하지 말고, 여유를 만들어서 개인의 삶에서 이상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일 속에서 이상을 찾으려는 분들의 고민은 뒤풀이 자리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아마 이런 종류의 고민은 계속 해결되지 않는 숙제 같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려는 사람은 나름의 해답을 찾아서 길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문화 전시 기획자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는 면에서 매력 있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문화 전시 기획자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나요? 다음 만남은 사운드/음악 기획자분인데,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갈지 기대됩니다.